로고


커뮤니티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추천리뷰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강동주, 피었다 사라지는 빛을 응시하다

정승현

강동주 개인전 《CAST》
: 창틀에 앉은 먼지가 푸른 하늘의 별이 되기까지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언제 어디서든 오색찬란한 우주를 마주할 수 있는 시대다. 웅장한 빛과 색으로 가득 찬 화면은 황홀감으로 남아 아른거린다. 하지만 하늘 위로 올라가 직접 우주를 마주한다면 우리 눈으로는 그 아름다운 색감을 담을 수 없다. 인간의 눈과 뇌는 적외선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인터넷으로 보는 우주는 파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정된 결과다. 

  아름다운 별빛을 직접 볼 수 없다니. 어릴 적, 불가사리 모양이라 믿었던 별이 사실은 우주 먼지와 기체가 응축된 울퉁불퉁한 덩어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만큼이나 허무한 것은 기분 탓일까? 여기저기 차고 넘치는 게 먼지인데. 초대한 적도 없는데 집 안 구석구석 친구의 사촌의 사돈의 팔촌까지 모여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것들. 그렇다면 우리 주변 곳곳에서는 별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는 걸까? 

강동주, 〈기대는 빛 #5〉, 2022, 종이에 먹지, 흑연가루, 179×119.5cm (출처: 에이라운지)

  강동주는 창가의 먼지부터 하늘의 별까지 기록한다. 강동주가 주변의 흔적을 수집하고 남기기 시작한 것은 일상이 붕괴된 팬데믹 시기 그즈음부터다. 모두가 집에만 머물러야 했던 시기, 작가는 어느 날 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빛을 보고 이를 기록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창문에 먹지를 대고 자신의 몸을 지지체 삼아 기대어 문지르자 자국이 남았다.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연필과 흑연으로 그려낸 자국은 우리를 둘러싼 먼지를 비롯해 주위의 흔적을 기록한 일지이자 빛의 경로가 새겨진 지도가 되었다. 이렇게 강동주는 먼지와 빛, 나아가서는 자신을 둘러싼 시간과 계절, 장소 등을 기록하며 기억의 의미를 되새긴다. 


강동주, 〈별이 빛났을 때 #5〉, 2025, 장지에 연필, 78×34cm (좌)
강동주, 〈어떤 일이 있더라도 #2〉, 2025, 장지에 청사진 인화, 180×120cm (우)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최근 강동주는 고전 인쇄기법인 ‘시아노타입Cyanotype(청사진)’을 활용해 별의 궤도와 유성우, 달의 표면 등을 기록한다. 시아노타입은 먹지와 드로잉을 활용한 작업보다 빛이 머물다 간 자리를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깊이의 푸름으로 물든 장지에 흩뿌려지듯이 그려진 흰 얼룩들은 언뜻 보면 푸른 하늘에 별이 총총 빛나는 것 같다. 시아노타입은 종이에 감광액을 바른 후 빛을 쐬면, 빛에 노출된 부분만 파랗게 변하고 빛이 차단된 부분은 하얀 점으로 남게 된다. 즉, 하늘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과 달리 강동주의 별은 빛에 가려짐으로써 비로소 별이 된다. 언뜻 보면 강동주가 시아노타입으로 기록한 별이 실제 별의 특성과 조금 달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두 별은 서로 닮았다.
 
 강동주는 단순히 별이 빛을 발하는 모습 그 자체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흰 장지에 연필로 한 획 한 획을 직접 그어 완성한 직선의 집합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음파를 닮았다. 크고 무거운 별이 순식간에 아주 작은 별로 붕괴하며 거대한 폭발과 함께 탄생하는 중성자별, ‘펄사(pulsar)’는 아주 빠르게 회전하며 강한 자기장을 형성한다. 동시에, 살짝 기울어진 대각선 방향으로 빛을 뿜어내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별의 신호가 마치 등대 불빛처럼 짧은 간격으로 강하게 깜빡이듯이 보인다.1) 이처럼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의 반짝임과 그들이 보내는 전파를 모아 그려낸다면 강동주의 작품과 비슷하지 않을까. 돌탑을 쌓듯 정성을 기울여 신중하게 그려나가는 강동주의 흔적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수행이자, 어딘가에 분명히 떠 있는 별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우주에서 본다면 지구는 그저 작은 먼지에 불과하고, 그 안의 우리는 더 작은 입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미세한 존재들이 모여 빛을 발하고, 반짝이는 하늘을 완성한다. 강동주의 작업은 이처럼 우리 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세계에 주목한다. 강동주의 손길로 기록된 먼지와 흔적, 빛의 결은 거대한 우주에서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사라지는 별과 닮아있다.

   『코스모스』 저자 칼 세이건이 말했듯, 우리는 별의 자녀로 태어나 다시 별로 돌아갈 존재다. 강동주의 작품은 그 여정의 연장선이다. 피었다 사라지는 빛을 담담히 응시하며, 결국 모든 존재가 다시 빛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고 그 기록을 종이 위에 새긴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희미하게나마 빛과 색을 남기며 살아가는 별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1) 지웅배, “시공간 전체의 떨림 ‘중력파 교향곡’을 감지하다”, 비즈한국(2023.08.07.)

정승현 ggubbyub@naver.com




전체 0 페이지 0

  • 데이타가 없습니다.
[1]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